컨텐츠영역 fnctId=material,fnctNo=0 자기 정당화에 급급한 MB 회고록 항목 저자 김근식(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련번호 NO25 [2015-02] 발행일 2015-02-02 자료보기 PDF DOWNLOAD KOR | ENG | JP | CN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퇴임한 지 2년이 채 안된 시기에 서둘러 회고록을 낸 시점부터 우선 묘하다. 그렇게 급하게 외교상 민감한 내용까지 포함해서 회고록을 발간한 것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정책결정에 참고’하기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된 것도 아니고 정권이 재창출된 현 정부에 전임 대통령이 국정과 관련해 경험을 공유하고 조언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회고록이라는 방식이 아니어도 다양한 통로와 기회가 있을 것이다. 회고록 발간으로 인한 정치적 파장과 한중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의 악영향을 감안한다면 회고록을 낸 이유가 단지 국정에 참고하라는 것이었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최근 남북 간 정상회담 논의가 진행되는 국면에서 자신의 정상회담 입장이 정당했음을 강변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에 훈수를 두기 위함이 일차적 목적으로 보인다. 회고록은 수 차례 정상회담 제안이 있었지만 북한의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정상회담에 매달리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했다는 자기 정당화 논리로 가득하다. 기회가 있었지만 원칙을 지키려고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정부도 정상회담에 매달리지 말고 원칙을 지키라고 강력하게 훈수하고 있는 셈이다. 정상회담 외에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회적 비판을 하고 있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해서는 안 되고 도발 후 대가 요구라는 북한의 행태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대북정책이 올바른 것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 등 교류협력 제안에 대한 불편함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재창출한 정부끼리 아웅다웅하는 것이 영 볼썽사납기는 하지만 전 대통령이 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나 정상회담 추진에 불만을 갖는 것은 자유이다. 자신의 대북정책이 옳았고 임기 중 남북관계가 성공적이었다고 치부하는 것도 자유이다. 그러나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자기 정당화의 논리를 국민들뿐 아니라 현 정부와 대통령에게 강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퇴임한 대통령으로서 겸허하게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고 수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치적 도리이지 청와대를 떠난 지 2년도 안 돼서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정치적 정당화에 나서는 것은 자신없는 조금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의 파탄을 결과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와 끌려다니기로 규정하면서 북한의 버릇을 고치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버릇을 고치지도 못했고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임기 내내 남북관계 파탄과 군사적 긴장고조로 일관했고 천안함?연평도 사태와 같은 안보위기마저 겪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는 자기주장에 매몰되어 원칙만 무성한 채 북한을 혼내주지도, 변화시키지도, 굴복시키지도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도발에 당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말뿐인 단호함이었고, 상처뿐인 원칙이었다.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은 말이 중요한 게 아니고 실제로 나타난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회고록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북한이 부당하게 대가를 요구해서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언급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자기 논리의 강변에 불과하다. 우선 북한이 요구했다는 쌀과 비료 등의 지원은 정상회담의 대가라기보다 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한 남북관계 여건 마련의 측면이 강하다. 정상회담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같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김대중 정부도 금강산관광 등 교류협력이 진전되고 대북 인도적 지원이 지속되는 가운데 상호 신뢰가 쌓이면서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 역시 2·13 합의로 북핵문제가 진전되고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남북관계가 지속되면서 정상회담의 조건이 마련되었다.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와 상호 협력의 지속을 통해 그 결과로서 가능한 것이지 관계 개선과 상호 신뢰 없이 갑자기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남북관계의 ‘입구’가 아니라 ‘출구’로서 정상회담이 가능한 것이다. 정상회담이 가능하려면 남한과 북한 모두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 정상회담 환경 마련의 의미로 북한이 인도적 지원 등을 거론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도 북한에 국군포로?납북자 귀환을 요구했음은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한중 정상 간에 이뤄진 대화를 공개하는 경솔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을 활용했다는 내용이지만 취지가 어찌되었던 간에 국가 정상 간의 회담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외교관계에서 취할 도리가 결코 아니다. 불과 몇 년 전 정상들이 은밀히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공개하는 나라를 세계 어느 나라가 신뢰하고 상대하려 하겠는가. 이는 당장의 문제일 뿐 아니라 앞으로의 한중관계에서도 장애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화자찬은 오히려 남북관계 악화를 결과했다는 점에서 칭찬이 아니라 반성의 대목이 되어야 한다. 끌려다니지 않았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무모한 고집과 오기만을 내세워 북한관리에 실패함으로써 한반도 긴장고조와 남북관계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역사적 오점에 대해 오히려 겸허하게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전 대통령이 반성보다는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태도는 대통령 재임 시절 국정경험을 담았다는 회고록의 진실성과 신뢰성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한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책은 팔릴지언정 전직 대통령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자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