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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저니맨(Journeyman)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 23.5기 이강민

일자: 2021-01-15

 
저니맨은 스포츠 용어인데 다양한 이유로 팀을 자주 옮겨 다니는 이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유명한 금언(金言)도 있는바, 되돌아보니 환경을 옮겨가며 살고 있었고, 그러한 나를 정의하는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저니맨화(化)는 대학을 간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전에는 한 환경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이다. 굳이 ‘소급’하면 전교생 90%가 가는 ‘ㅎ’중학교가 아닌, 길 건너 ‘ㅇ’중학교를 1지망으로 써서 입학한 정도라고 할까? 억지 같으니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천성이 소극적인 탓에 ‘변화 없음’을 좋아했다. 해본 것을 또 하는 것이 편하고 그 속에서 만족을 찾고는 했다. 그 결과 초-중-고 내내 추구했던 Status Quo는 ‘집콕’이었다. 주말마다 라디오를 맞춰 놓고 종일 게임을 하고 있노라면 그만한 ‘힐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재편성될 수밖에 없었다. 적응과 별개로, 우선 내 새 거주지가 된 하숙방은 대(大)자로 누울 수 없을 정도로 턱없이 좁았다. 위대한 시인이 자아 성찰과 암울한 현실 극복 의지를 드러냈다는 육첩방(六疊房)에서 난 도저히 좀이 쑤셔 ‘집콕’할 수가 없었다. 환경요인이 사람의 변화 계기는 주는 듯, 나는 매일 학교로 나갔다. 거기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했다. 그때부터 내게는 ‘적극성’이라는 것이 붙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이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계획하고 지원했다. 그 결과 교환학생으로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유럽을 쏘다니기도 했고, 공군 장교로 복무를 위해 대구에도 3년간 살았다. 전역 후 잠시 고향에 있다 지금은 다시 서울에 있다. 학부와 다른 대학원에서 말이다. 문득 되돌아보니 지역을 포함하여 다양하게 환경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그것을 즐기고 있는 나를 알게 됐다.
 
저니맨이 되어가면서 가진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성격의 변화일 듯싶다. 지금도 내 몸 가장 깊은 곳은 내향성이 있으나 환경을 바꿔가며 산 탓에 지금의 난 무척이나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성격을 바꾸는 것은 어릴 때 품은 내 목표 중 하나였기에,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한다.
 
각각에서 알게 된 다양한 사람들은 저니맨의 장점이다. 비록 장소에는 잠류(暫留)하지만, 인연은 오래도록 가져갈 수 있기에 그것을 귀중히 생각한다. 그들과 얘기를 하고 있노라면, 좋은 이 곁에서 그 기운에 점염(點染) 되다 보면 내 삶 방향의 시금석(試金石)을 찾을 때도 있다. 다양한 경험과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물론이다. 자왈(子曰),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여기서 학(學)은 다문다견(多聞多見)을 통한 박학(博學)이라는 풀이를 매우 좋아한다. 저니맨의 좋은 점을 설파할 기회이니 그 근거를 굳이 여기 덧붙인다.
 
당분간은 저니맨을 멈출 생각이 없다. –비록 의무복무지만- 군문(軍門)을 나와 삼청동에 잠시 둥지를 튼 요즘 하루하루가 바쁘다. 현실에서의 적응과 다음 곳으로 ‘저니’할 곳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바란 것과는 달리 남북관계는 여전히 답보다. 내후년 학위를 받고 삼청동을 떠날 즈음을 그려본다. 지금 내 마음은 하로‘동선’(夏爐冬扇)이다. 뭐, 계절은 바뀌니까... 이왕 ‘저니’할 것이면 바라건대는, 평화가 서린 한반도에 보습(耜) 대면서 부채질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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