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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ES현안진단

IFES현안진단
제목 새로운 남북관계 패러다임 구상의 필요성
저자

장철운(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일자 2017-07-24
문서번호 NO 65 [20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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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후속조치로 국방부와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에 남북군사당국회담과 남북적십자회담 개최를 각각 제의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제안한 10월 초 이산가족 상봉 및 성묘 준비를 협의하기 위해 8월 1일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이산가족 고령화 등을 감안한다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은 매우 시급하다. 남북군사당국회담 역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수위 등을 고려한다면 조속히 열려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신문>의 논평·논설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거부의사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남북군사당국회담 의제로 ‘군사분계선(MDL)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를 제시했다. 여기에서 ‘적대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북한의 반응을 보며 검토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지만, 우선은 남북한이 서로를 향해 하고 있는 심리전 방송 및 전단 살포 중지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그동안 북한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상호 비방·중상 중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남북군사당국회담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남북군사당국회담 의제로 보다 큰 틀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및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 등과 같이 근본적인 사안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새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와 관련해 북한은 지속적으로 정치·군사적 사안의 우선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인식이 잘 드러난 대표적 사례가 지난 6월 방한했던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발언이다. 장웅 위원은 당시에 스포츠 교류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물꼬를 트겠다는 구상에 대해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하고, 나쁘게 말하면 절망적”이라고 평가하며, 정치·군사적 문제의 우선 해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는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말이 아니라 행동을 근거로 판단할 것이라며, 오는 8월 말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연합훈련 중지를 간접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정은 체제가 강조하는 이른바 ‘근본문제’에는 상호 비방·중상 중단뿐 아니라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같이 관계국들 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사안들도 포함돼 있다.

  김정은 체제가 남북관계에서 정치·군사 문제 우선 해결을 앞세우는 것은 김정은 시대 들어 대남전략이 매우 보수적으로 회귀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김정은 정권은 2016년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통일 및 대남 문제와 관련해 1980~90년대 제기한 것과 다름없는 사안을 주장했다. 여기에서 2000년대 이뤄졌던 남북관계 진전의 유산은 찾기 어렵다. 그러면서 북한은 ‘경제건설 및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새로운 시대의 국가전략노선으로 제시하고, 이의 구현을 위해 각종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핵무력 건설 부문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핵·미사일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경제 부문에서는 시장 확대 등 인민경제 생활 개선 등을 통해 민심을 다독이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정권과 체제, 국가의 존망을 걸고 추진하는 핵·미사일 고도화는 반드시 성취해야만 하는 지상 과제이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지속적으로 받아온 북한이 외부의 제재·압박 강화 때문에 핵개발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당국은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하며 체제를 더욱 강하게 결속시키는 유용한 수단으로 외부의 제재·압박을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추진했던 대북 강경정책이 김정은 정권의 내구력을 더욱 강화시켰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북관계 정상화는 김정은 정권에게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한국은행이 7월 21일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은 2016년 남북관계 단절 및 국제사회의 제재·압박 강화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최고인 3.9%의 경제성장률을 나타냈다. 이는 최근 몇 년 내수 활성화에 따른 북한 경제 여건 호전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무엇보다 시급하게 달성해야 할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상당한 피해와 어려움을 감수하며 모든 것을 걸고 있다. 남북관계 복원·정상화에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북한의 호응이 필수적이지만,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돼야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등에 본격 나설 가능성이 크다.

  G20 정상회의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역량이 많이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비관적이거나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에서 강조한 한반도 평화는 지키는 것인 동시에 만들어가는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권 교체 초기에 북한이 늘 그러했던 것처럼, 김정은 정권 역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나름의 검증과 함께 상황 및 여건을 보고 있을 것이다.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방향을 전환시켰던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북한은 많은 시간 비판하고 검증했었다.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라는 위협 속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고민하고, 큰 틀에서의 전략과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주변국과 긴밀하게 협의·협조하며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스스로 달라졌다고 생각하며 대부분의 인도적 지원에 응하지 않는 북한에 우리가 과거의 방식으로만 접근하려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현안중심의 논의만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근본문제 논의가 이뤄져야 남북관계 복원·정상화의 시동을 제대로 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급하면서도 치밀하게 새로운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수립해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새로운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우선적인 지향점은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강조한 ‘한반도 평화’이다. 우리는 북한 및 주변국과 협의하며 남북관계 복원·정상화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상호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지금까지 남북관계 차원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반도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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