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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개성 만월대(滿月臺)에서의 단상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21기 박동화

일자: 2020-01-15

목탄차가 세상을 뿌옇게 만든 후 그 길을 나는 따라가고 있다. 갈라진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다 보니, 창문 너머로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공산주의 스타일의 프로파간다 표지판이 보인다. "자력갱생"이라는 선명한 빨간색 글씨........ 그 옆에는 꼬부랑 할머니와 제 몸뚱이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소가 쟁기를 등에 매고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많은 나라를 다녀봤고,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태어나서 그런 종류의 소는 처음 봤다. 소의 다리는 노루 다리 보다 얇았고 엉덩이에는 살이 없어 소의 성기가 적나라케 만큼 멀리서도 보였다. 그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에게 "우리민족의 힘으로 ,우리 스스로의 힘. 자력갱생"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굽은 허리만큼이나 힘든 삶의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았을까?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것은 다른 집단과 개인을 함부로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삐쩍 마른 소와 꼬부랑 할머니는 분명 남쪽에도 존재한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라는 틀에 박힌 말을 나는 좋아하지는 않지만, 많은 나라를 다녀보면서 그 말의 탄생에 대하여 알 수 있었다.

북한만큼이나 가난한 나라도 많이 방문해 보았고, 고된 삶이라 칭할 수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북한에서의 그 장면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은 그들을 가엽게 보려는 나의 자만일까? 아니면 나랑 달라야만 한다는 나의 잘못된 북한이라는 타자화의 신화에서 나오는 이질감일까? 그것들도 아니면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그들의 힘겨움에 대한 공감일까? 그 무엇이 이유이든 간에 나는 절대 북쪽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프란츠 파농 소설 <검은피부하얀가면>을 보면 , “우리는 절대로 백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때 나의 시각은 푸른 눈이 조선을 보는 듯한 ,타자화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수업시간에 배운 송두율의 “내제적접근법” 같은 단어들이 스쳐지나가지만, 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가장 키치(kitsch)한 단어가 되어버린 “keep calm & carry on”의 자세가 북한을 대하는데 있어 더 알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뜨겁지 않게, 그러나 꾸준히 잔잔히”처럼........
평생해결 하지 못할 것 같은 고민 속에서 나의 단상은 망상처럼 갈 길을 잃고 허공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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