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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통일된 나라의 작은 교실

고광영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 19기

일자: 2019-04-15

어디선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몰아 쉬는 소리가 내 귀에 내리꽂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불꽃같이 타오르는 눈빛이 나에 대한 원망을 한 가득 품고 있었다. 급기야 이 답답한 공간을 부숴버리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아가 문을 쾅 거칠게 닫아버렸다.
 
어쩌면 이 장면은 통일된 나라의 학교에서 충분히 재현될 수 있는, 그러나 가급적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풍경이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나는 북에서 건너온 친구들의 검정고시 준비를 도와준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반짝이는 기억은, 남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과 북에서 건너온 친구들이 아울러 구성된 학급을 맡아 함께했던 일이었다. 그 학급이 일년 간 활동 중 내가 맡았던 첫 학급인데다가 학생들 간 수준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불타는 열정으로 시중의 모든 교재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나만의 쉬운 자료를 준비했다. 그 자료를 갖고, 나는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말솜씨로 내용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려 했고, 학생들은 빠르게 흡수하는 듯 보였다. 한껏 교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러던 중 북에서 건너온 한 친구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던 것이다.
 
‘왜 나가버렸지? 이렇게까지 쉽게 알려주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지? 혹시 선생인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고민거리가 있나?’
 
나는 급하게 쉬는 시간임을 선언하고, 뒤쫓아갔다. 복도 한쪽에서 분을 삭이고 있는 친구 옆에 나란히 앉았다. 한 차례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그러자 그 아이는 더 빨간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네? 선생님이 왜요? 저는 제 자신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이 쉽게 알려주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기는 한데, 저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나를 원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 방식에 확신을 갖기 보다는 더욱 이 친구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학생은 본인 탓을 하는데, 선생이 어찌 학생을 탓하랴.
 
역설적으로, 수업 내용이 쉬울수록, 더 많이 알고 있는 남쪽 친구들이 더 활발하게 참여를 하였고, 북쪽 친구들이 위축되었다. 그래서 나는 남쪽 친구들을 따로 불러서 그들이 이 상황을 마음으로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수업 시간에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도록 부탁했다. 더불어 그들이 역으로 소외를 느끼거나 갈증을 느끼지 않도록 더 어려운 자료들을 추가로 만들어 공급하고, 개인적으로 따로 질문을 받고 해결해줬다.
 
다행스럽게 그 다음 수업부터는 북쪽 친구들이 먼저 대답을 하기 전까지는 남쪽 친구들이 같이 기다려주었고, 나도 질문이나 대답을 더 많이 하는 친구들이 아닌 북쪽 친구들과 눈을 더 많이 맞추려고 노력했다.
 
학기말까지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과연 내 방식이 옳았는지 아직까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처음보다 소외된 학생들이 줄어들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면 지금도 긴장하게 된다. 그저 한 순간의 추억이라고 치부하기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소외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존재할 것이고, 언젠가 맞이할 수 있는 통일된 나라의 작은 교실에서도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예전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까. 북한을 분석하고 통일을 연구함에 있어서, 거시적인 이론을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함을, 내 자신이 잊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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